아름다운 별장의 연못에 빠져 죽을 결심을 여러 번 했다는 프랑스의 사상가 루소(JJ Rousseau,1712-1778)는 자살을 미화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는 자살을 결행할 용기가 부족한 겁쟁이(coward)였다고 한다.
어느 날 소설가 드니 디드로(D Diderot, 1713~1784)가 루소의 별장을 방문했을 때 루소는 연못 주위를 산책하면서 이런 얘기를 했다. “여보게, 나는 스무 번이나 이 연못에 투신 자살하려고 했네.” 그러자 디드로가 말했다. “그러면 왜 이때까지 그렇게 하지 않았소.” 그때 루소는 “물속에 손을 넣어보니 차가워서 견딜 수가 있어야지.”라고 대답했었다고 한다.
사디즘(sadism)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프랑스의 작가 마르키드 사드(M de Sade, 1740~1814)는 ‘자살은 인간이 선택할 수 있는 가장 고귀한 행동’이라고 표현했지만 그 자신은 병사했다. 아무리 현실이 어렵더라도 자살은 결코 문제의 해결이 될 수 없다는 단적인 에가 아닐까.
BC 90년경, 고대 중국을 무대로 역사와 인간을 탐구한 사마천(司馬遷, BC 145 ?~BC 86 ?)의 사기(史記)에는 자살에 관해서 용기 없는 행동이라고 말하고 있다. 즉 현인은 진실로 죽음을 중히 여기며, 생명을 존엄하게 생각한다.
저 비첩(婢妾) 천인(賤人)이 순간적 감정을 못이겨서 자살하는 것은 참된 용기가 있어서 하는 것이 아니다. 계획이 실패로 돌아가면 두 번 다시 고쳐서 할 만한 용기가 없기 때문이라는 해석이다.
여자의 정절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던 유교사회에서 다산 정약용(1762-1836)만큼은 남편을 잃은 아내가 자살하는 것이 옳지 않은 행동이란 반론을 폈다고 한다. 오히려 강한 마음을 갖고 자식을 양육하고 부모를 봉양하는 여성이 더욱 훌륭하다는 주장이었다. 이렇게 선인들도 자살에 대한 생각은 각각 달랐지만, 결국 자살을 해서는 안된다는데 결론이 모아진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떠할까. 40분마다 1명, 하루 40명, 한해에 1만4천명이 자살하는 나라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13년 연속 자살률 1위라는 불편한 진실은 우리의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우리나라의 자살률은 2018년 기준 인구 10만 명당 26.6명으로 OECD 평균 11.5명의 2.3배나 된다.
자살률은 2000년(13.6명) 이후 무려 100%(26.6명)나 늘어 심각성을 더하고 있다. 이것은 일본 15.2, 미국 13.9, 영국 7.3, 터키 2.6명과 비교해도 현저히 높고, 같은 기간 포르투갈·칠레를 제외한 대부분의 OECD 회원국에서 감소세를 보이는 것과 사뭇 다른 결과다.
유감스럽게도 10대 청소년 사망원인 중 자살은 37.5%, 20대의 경우에는 47.2%로 악성신생물(암) 보다 높았다. 이것은 자살증후군이 청소년층에까지 확산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인구 10만명 당 남성의 자살율이 38.5명으로 여성(14.8명) 보다 현저히 높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남성들의 경제적 부담감이 그만큼 크지고 있을 뿐 아니라, 우리 사회의 병리현상이 그만큼 깊어지고 인간 존엄성이 훼손되어 건강성을 잃고 있다는 방증이 아닐까싶다.
여기서 우린 덴마크의 자살예방 사례를 꼽씹어볼 필요성이 있다. 30여 년전인 1980년 덴마크의 자살률은 31.6명으로 세계 1위였다. 그러나 지금은 세계 26위(10.6명)에 불과하다. 1983년 당시 한국의 자살률은 8.7명에 불과했다. 그렇다면 덴마크가 자살률을 획기적으로 낮출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덴마크가 전국 20곳에 설치한 ‘국립자살예방클리닉’이 그 해답이었다. 1992년 설립된 국립자살클리닉은 2006년 덴마크 의료보험체계 안으로 편입됐고, 국민 누구든 무료로 상담과 치료를 받을 수 있다.
덴마크가 전국에 자살클리닉이 갖춰지면서 집중관리가 이뤄짐으로써 자살률이 큰 폭으로 떨어진 것은 뭘 의미할까. 경남의 각 지자체에도 자살예방센터의 설립을 통해 자살율을 막고 인간의 존엄성을 숭고하게 해야 할 필요한 이유는 자명해졌다.
옛말에 망우보뢰(亡牛補牢)와 망양보뢰(亡羊補牢)란 말이 있다. 망우보뢰는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뜻이고, 망양보뢰는 ‘양이 달아난 뒤 다시 우리를 고쳐도 늦지 않다’는 말인데, 요즘 청소년 자살, 그리고 남성자살율이 급증하면서 우리 사회가 간과하고 있는 문제가 있지 않은가 깊이 생각해 본다.
매년 9월 10일은 세계 자살예방의 날(World Suicide Prevention Day)이다. 우리도 정부와 지자체가 앞장서 자살문제를 공론화하여 사회의 불합리한 시스템을 개선하고, 국가적 차원의 실효성 있는 자살예방 정책을 수립할 것을 촉구한다.